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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르페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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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르주 르페브르는 프랑스 혁명을 연구한 프랑스의 역사학자이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귀족, 부르주아, 도시 민중, 농민의 네 가지 혁명의 복합으로 파악하고, 기존의 유물사관적 혁명 해석을 넘어 혁명을 중층적으로 설명하고자 했다. 1924년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 "프랑스 혁명 하의 노르 현의 농민"을 시작으로, 1935년부터 소르본 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며 프랑스 혁명사 연구에 매진했다. 르페브르의 연구는 농민의 시각을 강조하고, 1970년대 심성사 및 사회사적 접근에 영향을 미쳤다. 주요 저서로는 《89년》, 《프랑스 혁명》, 《나폴레옹》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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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르주 르페브르
기본 정보
조르주 르페브르
조르주 르페브르
출생1874년 8월 6일
사망1959년 8월 28일 (85세)
직업역사학자
분야프랑스 혁명사
모교릴 대학교
파리 대학교
경력
재직 기관릴 대학교
렌 대학교
소르본 대학교
학문적 배경
학문적 영향에르네스트 라브루스

2. 생애와 연구

릴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장학금의 도움으로 공립학교와 릴 대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2][3] 대학에서는 고전 언어 대신 현대 언어, 수학, 경제학 등을 배우는 실용적인 교육 과정을 이수했으며, 이는 훗날 그의 역사 연구에 밑거름이 되었다.[3] 졸업 후 20년 이상 중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3][4] 클레르몽페랑과 스트라스부르를 거쳐 1935년 소르본 대학교의 프랑스 혁명사 교수로 임명되었다.[9] 같은 해 로베스피에르 연구회( Societé des Études Robespierristesfra ) 회장과 프랑스 혁명사 전문 학술지인 ''프랑스 혁명 연대기''(Annales historiques de la Révolution françaisefra) 편집장을 맡았다.[8]

르페브르는 프랑스 혁명을 단순히 하나의 사건으로 보지 않고, "귀족 혁명", "부르주아 혁명", "도시 민중 혁명", "농민 혁명"이라는 네 가지 흐름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분석했다. 이는 각 혁명이 서로 다른 동기와 목적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부합하는 시민 혁명의 형태로 귀결되었다는 독창적인 시각이다. 특히 그는 농민과 도시 민중의 관점에서 혁명을 조명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 연구를 개척하여, 기존의 정치사 중심 연구와는 다른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러한 연구 경향은 제2차 세계 대전 즈음부터 깊어진 마르크스주의의 영향과도 관련이 있으며, 경제 구조와 계급 관계 분석을 중시하는 그의 학문적 특징으로 나타났다.

1924년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 "프랑스 혁명 하의 노르 현의 농민(Les paysans du Nord pendant la Révolutionfra)"은 그의 대표적인 연구 업적으로 꼽힌다. 1945년 소르본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에도 노년까지 연구 활동을 이어갔으며,[8] 1959년 불로뉴-빌랑쿠르에서 사망했다.

2. 1. 개인적 배경

르페브르는 에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다.[2] 그는 공립학교를 다녔으며, 장학금의 도움을 받아 중등 교육과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릴 대학교에서는 고전 언어 대신 현대 언어, 수학, 경제학을 강조하는 "특별 커리큘럼"을 따랐는데,[3] 이는 훗날 그의 역사 연구에도 영향을 미쳤다. 1898년 대학 졸업 후, 그는 20년 이상 여러 중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했다.[3] 중등학교 교사 경력을 마친 후에는 대학에서 가르치기 시작했다.[4]

제2차 세계 대전 즈음부터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을 점차 받게 되었으며, 특히 역사가 경제 구조와 계급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

그는 1959년 파리에서 사망했다.

2. 2. 학문적 업적

르페브르는 1904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1914년에는 ''혁명 기간 동안 베르그 지역의 식량 공급사 관련 문서''(Documents relatifs à l’histoire des subsistances dans le district de Bergues pendant la Révolution (1788-An V)fra)라는 문서 모음을 출판했다.[8] 그러나 그의 학문적 명성은 50세가 되던 1924년에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 《프랑스 혁명 시기의 북부 농민》(Les Paysans du Nord pendant la Révolution françaisefra)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3] 이 논문은 프랑스 혁명이 농촌에 미친 영향을 상세하고 철저하게 분석한 연구로, 수천 건의 세금 장부, 공증 기록, 농촌 자치체 등록부 등을 면밀히 검토하여 봉건제와 교회 십일조 폐지, 재산 이전, 부르주아지의 농촌 진출, 농민 공동체 권리 파괴 등의 영향을 추적했다.[3] 특히 그는 당시 농민들의 관점에서 혁명을 조명하려 노력했다.

르페브르는 프랑스 혁명을 단일한 사건이 아닌 "귀족 혁명", "부르주아지 혁명", "도시 민중 혁명", "농민 혁명"이라는 네 가지 혁명의 복합체로 파악하는 독창적인 시각을 제시했다.[5] 그는 이 네 혁명이 각기 다른 구성원, 동기, 목적을 가지고 자율적으로 진행되었으며, 최종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이익에 부합하는 형태로 수렴되어 시민 혁명으로서의 성과를 남겼다고 보았다. 이는 기존의 유물사관에 기반한 단순한 혁명 찬미나, 반대로 혁명을 테러로 치부하며 왜소화하려는 시각 모두를 비판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였다. 동료 역사학자들은 르페브르의 이러한 접근이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이전까지 지배적이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혁명 해석"을 제공했다고 평가한다.[6] 피터 존스는 르페브르의 관점이 농민의 적극적인 혁명 참여, 부르주아지로부터의 자율성, 그리고 반자본주의적 사고방식이라는 세 가지 주요 특징을 갖는다고 설명했다.[6]

이러한 분석은 알베르 마티에처럼 혁명을 시기별로 나누는 기존 연구와 차별화된다. 마티에가 여전히 정치사 중심의 "위로부터의 역사" 관점에 머물렀다면, 르페브르는 도시 민중과 농민의 시각, 즉 "아래로부터의 역사" 관점을 도입하여 혁명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접근 방식은 이후 1970년대부터 활발해진 프랑스 혁명의 "심성사" 및 사회사 연구 발전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학문적 경력 면에서는 클레르몽페랑과 스트라스부르 대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35년에는 소르본 대학교(파리 대학교)의 프랑스 혁명사 교수로 임명되었다.[9] 같은 해 로베스피에르 연구회(Societé des Études Robespierristes) 회장과 프랑스 혁명사 전문 학술지인 ''프랑스 혁명 연대기''(Annales historiques de la Révolution françaisefra) 편집장을 맡았다.[8] 제2차 세계 대전 즈음에는 역사가 경제 구조와 계급 관계에 주목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주의 사상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1945년 소르본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에도 노년까지 프랑스 혁명 연구에 매진했다.[8]

3. 프랑스 혁명 연구

조르주 르페브르는 프랑스 혁명 연구, 특히 농민사 연구"아래로부터의 역사" 관점 도입에 중요한 기여를 한 역사가이다. 그는 1924년 박사 학위 논문 《프랑스 혁명 시기의 북부 농민》(Les Paysans du Nord pendant la Révolution française프랑스어)을 통해 혁명이 농촌 사회와 농민에게 미친 영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3] 이 연구는 방대한 1차 사료 분석을 통해 봉건제 폐지, 재산 관계 변화 등 구체적인 영향을 밝혔다.[3]

르페브르는 프랑스 혁명을 단일한 흐름이 아닌, "귀족 혁명", "부르주아지 혁명", "도시 민중 혁명", "농민 혁명"이라는 네 가지 혁명의 복합체로 파악하는 독창적인 분석 틀을 제시했다.[5] 이는 혁명을 농민 등 민중의 관점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였으며, 각 혁명 주체들의 독자적인 동기와 목표가 있었음을 강조했다. 또한, 그는 《멘탈리테》(심성) 개념을 통해 과거 사람들의 집단적 사고방식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주요 저작으로는 혁명 원인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을 담은 《89년》(Quatre-Vingt-Neuf프랑스어, 1939)과 영어권에서 고전으로 평가받는 《프랑스 혁명의 도래》(The Coming of the French Revolution영어, 1939) 등이 있다. 《89년》은 출간 직후 비시 프랑스 정권에 의해 탄압받아 소각되는 등 정치적 수난을 겪기도 했는데, 이는 혁명에 대한 비판적 해석을 용납하지 않으려 했던 당시 우익 정권의 성격을 보여준다. 그의 연구는 이후 프랑스 혁명의 심성사사회사 연구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6]

3. 1. 《프랑스 혁명》

르페브르의 대표 저작 중 하나인 《프랑스 혁명의 도래》는 프랑스 혁명을 네 명의 핵심 주역, 즉 귀족 (군주제 개혁 방해), 부르주아지, 도시 혁명 (바스티유 감옥 습격 등), 그리고 농민 혁명의 관점에서 분석한다.[5] 그는 프랑스 혁명을 단순히 하나의 흐름으로 보지 않고, "귀족 혁명", "부르주아 혁명", "도시 민중 혁명", "농민 혁명"이라는 네 가지 혁명이 복합적으로 얽혀 진행된 것으로 파악했다.

르페브르는 이 네 가지 혁명이 각기 자율적으로 진행되었으며, 혁명을 이끈 구성원, 그들의 동기와 목적 역시 서로 달랐다고 분석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이 최종적으로는 부르주아 혁명(시민 혁명)의 성격을 띠게 되었다고 보았지만, 이는 기존의 유물사관에 기반한 단순한 해석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그는 네 가지 혁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결과적으로 부르주아 계급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수렴되면서 '부르주아 혁명'으로서의 성과가 남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분석은 기존의 프랑스 혁명 연구와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알베르 마티에와 같이 혁명을 여러 단계로 나누어 분석한 연구는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는 주로 시간 순서에 따른 분류에 그쳤고, 여러 혁명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인 양상을 체계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는 정치사 중심의 '위로부터'의 시각에 기반한 연구였다. 반면, 르페브르는 도시 민중이나 농민의 관점에서 혁명을 바라보는 '아래로부터'의 시각을 도입하여 프랑스 혁명 연구에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그의 이러한 접근은 이후 1970년대부터 활발해진 프랑스 혁명의 심성사사회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동료 역사학자들은 특히 르페브르가 1924년부터 1959년까지 마지막 35년간 집필한 저술에 주목하는데, 이 시기에 그는 이전까지 지배적이었던 해석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다층적인 혁명 분석을 제시했기 때문이다.[6] 피터 존스는 르페브르의 혁명관이 세 가지 주요 특징을 가진다고 요약했다. 첫째, 농촌의 농민들이 혁명에 소극적으로 끌려간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점. 둘째, 이러한 농민들의 참여가 부르주아지의 영향력과는 별개로 독자적인 동기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점. 셋째, 1790년대 농민들이 대체로 반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점이다.[6]

3. 2. 《89년》과 《프랑스 혁명의 도래》

르페브르는 프랑스 혁명 발발 150주년을 기념하여 1939년에 Quatre-Vingt-Neuf프랑스어 (89년)을 출판했다. 이 책에서 그는 혁명의 원인과 과정을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그러나 이듬해 들어선 비시 프랑스 정권은 반공화주의적 우파 세력의 지지를 받아, 혁명에 대한 좌익적 해석이나 우호적인 설명을 용납하지 않았다. 비시 정권은 이 책을 위험 사상으로 간주하여 탄압했고, 인쇄된 8,000부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Quatre-Vingt-Neuf프랑스어는 1970년에 다시 출판되기 전까지 프랑스 내에서는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반면, 영어권에서는 같은 해 출간된 영어 번역본 The Coming of the French Revolution영어 (프랑스 혁명의 도래)가 큰 성공을 거두었다. 명확하면서도 깊이 있는 분석으로 고전 반열에 올랐으며, 르페브르에게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주었다. 이 책은 혁명 원인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의 결정적인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미국의 역사학자 크레인 브린턴은 《더 네이션》 지에서 이 책을 "...프랑스 혁명 연구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Quatre-Vingt-Neuf프랑스어에서 제시된 르페브르의 분석은 프랑스 혁명을 단순히 하나의 흐름으로 보지 않고, "귀족 혁명", "부르주아 혁명", "도시 민중 혁명", "농민 혁명"이라는 네 가지 혁명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파악한다. 이는 기존의 유물사관에 기반한 단순한 혁명 찬양이나, 반대로 혁명을 테러로만 폄하하는 시각 모두를 비판하며 혁명을 다층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각 혁명이 자율성을 가지며 서로 다른 목표와 동기를 가졌다고 보았고, 최종적으로는 부르주아 혁명(시민 혁명)의 성과로 귀결되었지만, 그 과정은 여러 세력의 복잡한 상호작용의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역사" 관점은 알베르 마티에처럼 시계열적 정치사 중심으로 혁명을 분석하던 기존 연구와 차별화되며, 이후 사회사심성사 연구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3. 농민과 혁명

르페브르는 1924년, 50세에 발표한 박사 학위 논문 《프랑스 혁명 시기의 북부 농민》(Les Paysans du Nord pendant la Révolution française프랑스어)을 통해 프랑스 혁명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3] 이 연구는 프랑스 혁명이 농촌 사회에 미친 영향을 깊이 있게 다루었으며, 수천 건의 세금 장부, 공증 기록, 농촌 자치체 등록부 등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물이다. 르페브르는 이 자료들을 바탕으로 봉건주의 및 교회 십일조 폐지, 재산 이전, 부르주아지의 농촌 진출, 그리고 농민 공동체의 집단적 권리 파괴 등이 가져온 변화를 상세히 추적했다.[3]

그는 종종 당시 농민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하고자 했으며, 대표적인 저서 《프랑스 혁명의 도래》에서는 혁명을 이끈 네 가지 핵심 동력으로 귀족, 부르주아지, 도시 혁명(바스티유 감옥 습격 등), 그리고 농민 혁명을 제시했다.[5]

역사가 피터 존스에 따르면, 르페브르의 혁명 분석은 세 가지 중요한 점을 강조한다. 첫째, 농촌 농민들이 혁명 과정에서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적극적인 참여자였다는 것. 둘째, 농민들의 혁명 참여는 부르주아지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 셋째, 1790년대 농민들은 대체로 반자본주의적인 사고방식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6]

르페브르는 프랑스 혁명을 단일한 사건이 아닌, "귀족 혁명", "부르주아지 혁명", "도시 민중 혁명", "농민 혁명"이라는 네 개의 서로 다른 혁명이 복합적으로 전개된 과정으로 이해했다. 이는 유물사관에 입각한 단순한 혁명 찬양이나, 반대로 혁명을 단순한 테러로 폄하하는 기존의 이분법적 시각에서 벗어나 혁명의 다층적인 성격을 밝히려는 시도였다. 그에 따르면, 이 네 혁명은 각기 다른 목표와 동기를 가진 집단에 의해 자율적으로 추진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수렴되면서 시민 혁명으로서의 성과를 남겼다.

이러한 르페브르의 분석은 기존 연구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예를 들어 알베르 마티에는 혁명을 시간 순서에 따라 단계별로 나누었지만, 여러 혁명적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잡한 양상을 충분히 설명하지는 못했다. 반면 르페브르는 정치 엘리트 중심의 "위로부터의 역사"가 아닌, 도시 민중과 농민의 시각을 중시하는 "아래로부터의 역사" 연구 방식을 개척했다. 이는 1970년대 이후 프랑스 혁명 연구에서 심성사사회사적 접근이 활발해지는 데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4. 《멘탈리테》와 심성사 연구

조르주 르페브르는 기존의 프랑스 혁명 연구와는 다른 접근 방식을 취했다. 이전의 연구, 예를 들어 알베르 마티에의 연구는 혁명을 주로 시간 순서에 따라 단계를 나누거나 정치사 중심의 "위로부터"의 시각에 머물렀다. 마티에는 혁명을 다섯 단계로 분류했지만, 여러 혁명이 동시에 진행되는 복합적인 측면을 체계적으로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에 반해 르페브르는 도시 민중이나 농민의 시각, 즉 "아래로부터의 시선"에서 혁명을 분석하고자 했다. 그는 프랑스 혁명을 "귀족 혁명", "부르주아 혁명", "도시 민중 혁명", "농민 혁명"이라는 네 가지 혁명이 자율적으로 진행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복합적인 과정으로 파악했다. 이는 각 혁명 주체의 동기와 목적이 달랐음을 보여주며, 혁명을 단일한 사건이 아닌 다층적인 현상으로 이해하게 했다.

르페브르의 이러한 "아래로부터의 역사" 관점은 단순히 정치적 사건의 나열을 넘어, 혁명 시기 민중들의 집단적인 심리나 생활 방식에 주목하는 연구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러한 접근 방식은 1970년대 이후 프랑스 혁명 연구에서 활발하게 이루어진 "심성사" 연구나 사회사적 접근 방식에 중요한 토대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5. 주요 저작

르페브르의 대표작 중 하나는 프랑스 혁명 150주년을 기념하여 1939년에 출판된 '''`''89년''`'''(Quatre-Vingt-Neuffra)이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의 기원에 대한 그의 설명을 담고 있다. 그러나 출간 이듬해 들어선 비시 프랑스 정권은 공화주의에 반대하는 우파의 입장을 따라 혁명에 대한 좌파적 해석을 담은 이 책을 탄압했고, 8,000부를 소각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 때문에 프랑스 내에서는 1970년 재출간 전까지 거의 알려지지 못했다. 반면, R. R. 팔머가 번역한 영어판 `''프랑스 혁명의 도래''`(The Coming of the French Revolutioneng, 1947)는 영어권에서 명확하면서도 깊이 있는 고전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은 혁명의 원인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적 해석을 대표하는 저작으로 평가받는다. 크레인 브린턴은 이 책을 "프랑스 혁명 연구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라고 평가했다.

그의 또 다른 중요한 저작으로는 `''프랑스 혁명''`(La Révolution Françaisefra, 개정판 1951)과 `''나폴레옹''`(Napoléonfra, 제4판 1953)이 있다. 두 저작 모두 영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혔으며, 특히 `''나폴레옹''`은 매우 뛰어난 연구로 평가받는다.

르페브르는 역사 연구에서 '''멘탈리테(mentalité)'''라는 개념을 중요하게 다루었는데, 이는 과거 사람들의 집단적인 물질적, 정신적 세계를 이해하려는 접근 방식이다. 특히 그는 농민들의 멘탈리테 분석을 통해 프랑스 혁명을 설명하고자 했다.

르페브르의 주요 저작 목록과 세부 정보는 아래 하위 섹션에서 확인할 수 있다.

5. 1. 프랑스어 원서


  • ''Les Paysans du Nord pendant la Révolution Françaisefra'' (1924)
  • ''La Grande Peur de 1789fra'' (1932): 조안 화이트(Joan White)가 ''1789년의 대공포: 프랑스 혁명기의 농촌 공황''(The Great Fear of 1789: Rural Panic in Revolutionary Franceeng, 1973)으로 영역했다.
  • ''Les Thermidoriensfra'' (1937)
  • ''Le Directoirefra'' (1946): 위 ''테르미도르파''와 함께 로버트 발딕(Robert Baldick)이 ''테르미도르파와 총재정부: 프랑스 혁명의 두 국면''(The Thermidorians & the Directory: Two Phases of the French Revolutioneng, 1964)으로 영역했다.
  • ''Quatre-vingt-neuffra'' (1939): 프랑스 혁명 150주년을 기념하여 출판되었으며, R. R. 팔머가 ''프랑스 혁명의 도래''(The Coming of the French Revolutioneng, 1947)로 영역했다.
  • ''Napoléonfra'' (1935): 헨리 F. 스톡홀드(Henry F. Stockhold)와 J. E. 앤더슨(J. E. Anderson)이 각각 1, 2권으로 나누어 ''나폴레옹: 브뤼메르 18일에서 틸지트 조약까지, 1799-1807''(Napoleon: From 18 Brumaire to Tilsit, 1799-1807eng)과 ''나폴레옹: 틸지트 조약에서 워털루까지, 1807-1815''(Napoleon: From Tilsit to Waterloo, 1807-1815eng)로 영역했으며(1969), 후에 한 권으로 합본되었다(2011).
  • ''La Révolution Françaisefra'': 제1권(1951)은 엘리자베스 모스 에반슨(Elizabeth Moss Evanson)이 ''프랑스 혁명: 기원에서 1793년까지''(The French Revolution: From Its Origins to 1793eng, 1962)로, 제2권(1957)은 존 홀 스튜어트(John Hall Stewart)와 제임스 프리규리에티(James Friguglietti)가 ''프랑스 혁명: 1793년부터 1799년까지''(The French Revolution: From 1793 to 1799eng, 1964)로 영역했다.

5. 2. 한국어 번역본

(해당 섹션에 대한 정보가 원본 소스에 존재하지 않아 내용을 작성할 수 없음)

참조

[1] 웹사이트 "Jesse Lemisch and History from the Bottom Up" https://www.marcusre[...] 2021-02-01
[2] 서적 The French Revolution Volume I: from its Origins to 1793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3] 웹사이트 Lefebvre, Georges http://ea.grolier.co[...] Encyclopedia Americana 2008-03-06
[4] 서적 The French Revolution Volume I from its Origins to 1793 (prefac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5] 서적 A Concise History of Franc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02-06
[6] 간행물 Georges Lefebvre and the Peasant Revolution: Fifty Years on JSTOR. George Mason U. Lib. 1990-04-01
[7] 서적 Georges Lefebvre: Historian and Public Intellectual, 1928-1959 (PhD dissertation) University of Connecticut
[8] 문서 Foreword. The French Revolution Volume I from its origins to 1793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9] 문서 Foreword. The French Revolution Volume I from its origins to 1793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0] 서적 The French Revolution Volume I: from its Origins to 1793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1] 웹인용 Lefebvre, Georges http://ea.grolier.co[...] Encyclopedia Americana 2008-03-06
[12] 서적 The French Revolution Volume I from its Origins to 1793 (preface)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3] 서적 A Concise History of France https://archive.org/[...]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4-02-06
[14] 저널 Georges Lefebvre and the Peasant Revolution: Fifty Years on JSTOR. George Mason U. Lib. 1990-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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